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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손으로 만든 것'을 넘어서] 09-08-2024


‘손으로 만든 것’을 넘어서

기계를 통한 대량 생산이 보편화된 세상에서 ‘handmade 손으로 만든’ 수제품(手製品)은 귀한 취급을 받습니다.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음식에 ‘수제’를 붙이면 정성과 손맛이 들어간 ‘고급’이 됩니다.

신약성경에도 ‘손으로 만든’을 뜻하는 ‘케이로포이에토스(χειροποίητος)’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손(케이르/χείρ)’과 ‘만들다(포이에오/ποιέω)’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 표현은 부정적으로 사용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과 대조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에베소서 2:10절에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만드신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소개하는 반면, 11절에서 유대 할례자들에 대해서는 “손으로 행한 할례를 받았다고 뽐내는” 사람들이라고 부릅니다.

또 ‘손으로 만든(케이로포이에토스/χειροποίητος)’ 것은 우상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 집사는 아론의 금송아지 사건을 떠올리며 “자신들이 손으로 만든 것을 두고 즐거워하였다”(41절)면서, 48절에서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 안에 거하지 않으신다.”라고 선언합니다. 이 말이 스데반을 죽음으로 이끌었습니다.

마가복음 14:58절에서 예수님이 의회 앞에서 재판받을 때 어떤 사람이 “우리가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내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허물고, 손으로 짓지 않은 다른 성전을 사흘 만에 세우겠다’고 하였습니다.”라고 예수님을 고소합니다.

히브리서 9장은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손으로 만든 장막/성소’에 들어가지 않고, ‘손으로 만들지 않은 성소, 바로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다”고 말합니다. 이 선언은 유대인에게 충격적이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죽음과 스데반 집사의 죽음은 모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성전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혹세무민하고, 성전을 통하여 하나님의 대리자 행세를 하며 온갖 세상 것을 누리고,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해 강도질을 일삼아 ‘기도하는 집’인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 때문이었습니다.

비단 건물이나 물건만이 아닙니다. 제도나 사상 역시 인간이 만든 것을 절대화할 때 우상이 됩니다. 얼마 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한 오프라 윈프리는 “책은 위험하고 소총(rifle)은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예배하는 올바른 방식을 가르치면서 사랑하는 일을 틀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right way to worship, wrong way to love)”이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예배에 절대적으로 옳은 방식이 있을까요? 자신들의 방식만 옳다고 주장하는 걸 교조주의라고 합니다. 또 사랑에 잘못된 방식이 있을까요? 집착이나 강박이라면 모를까 사랑에 그른 방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게 다 사람 손으로 만든 겁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과 그분의 정의와 거룩을 독점한 성전 지배 세력에 항거하면서 일어서게 되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요한일서 4:12절이 대답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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