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분명히 봤는데] - APR. 25
- 작성자 : KCPC
- 조회 : 1,668
- 10-04-27 19:52
[내가 분명히 봤는데]
우리 인간은 늘 불완전합니다.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감각기관이 있는데, 어떨 때는 그 감각기관의 능력이 놀랍기도 하지만 때로는 엉뚱한 결과를 내놓기도 합니다. 분명히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틀린 경우가 있고, 분명히 들었는데 잘못 들은 경우도 많습니다.
분명히 고속도로에서 exit 번호 #38번이라고 보고 나왔는데 #33으로 나와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되어서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사람들은 “내가 분명히 봤는데...” 라고 말하곤 합니다.
어떤 교인이 새로 부임한 목사님 사모님과 친하게 지내니까 다른 교인이 “사모님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그 교인은 사모님과 같은 고향인지라 “응, 사모님? 고향이 같아.”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교인은 그날부터 다른 교인들에게 아무개가 사모님을 “고양이 같다”고 말했다고 떠들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고향이 같아”를 “고양이 같다”고 잘못 듣고도 “내가 분명히 들었는데...”라고 변명을 합니다.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이 얼마나 부정확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들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분명히 본 것이나 귀로 들은 것도 때로는 틀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가 보았으니 틀림없다고 우겨대거나 내가 들었으니 틀림없다고 우겨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의 깊이는 ‘본다’는 것과 ‘듣는다’는 것에 집착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종종 엉뚱한 환상을 보거나 듣고 나서 그것이 유일무이한 진리인 것처럼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보았으니 틀림없다고 우겨대는 것입니다. 보았어도 잘못 보는 수가 있고, 들었어도 잘못 들은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알았어도 잘못 알 수가 있고, 또 제대로 알았던 것도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 바뀔 수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니 자기가 보았고, 들었고, 알았다고 해서 확실하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잘못입니다.
서로를 존중해야 건강한 공동체를 세울 수 있습니다. 교회공동체도 그렇고 가정 공동체도 그렇습니다. 내가 본 것이니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고 고집하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이니 그게 절대 진리라고 주장해서는 건강한 세상을 만들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는 보고 듣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생각하고 판단한 것이 유일무이한 진리인 것처럼 주장하면 교회는 늘 분란을 만나게 됩니다. 내가 보는 것이 부정확한 것일 수도 있는 것처럼 내가 생각해 낸 것도 완전한 진리는 아닙니다. 아무리 옳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양보하는 덕스러움도 있어야 합니다.
끝까지 주장하는 사람은 교회 지도자로서는 부적합합니다. 몇 번 주장하다가도 철회할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특히 교회는 더 그렇습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는 사람”보다 때로는 할 말을 참는 사람이 더 큰 일을 하는 곳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
우리 인간은 늘 불완전합니다.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감각기관이 있는데, 어떨 때는 그 감각기관의 능력이 놀랍기도 하지만 때로는 엉뚱한 결과를 내놓기도 합니다. 분명히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틀린 경우가 있고, 분명히 들었는데 잘못 들은 경우도 많습니다.
분명히 고속도로에서 exit 번호 #38번이라고 보고 나왔는데 #33으로 나와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되어서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사람들은 “내가 분명히 봤는데...” 라고 말하곤 합니다.
어떤 교인이 새로 부임한 목사님 사모님과 친하게 지내니까 다른 교인이 “사모님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그 교인은 사모님과 같은 고향인지라 “응, 사모님? 고향이 같아.”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교인은 그날부터 다른 교인들에게 아무개가 사모님을 “고양이 같다”고 말했다고 떠들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고향이 같아”를 “고양이 같다”고 잘못 듣고도 “내가 분명히 들었는데...”라고 변명을 합니다.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이 얼마나 부정확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들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분명히 본 것이나 귀로 들은 것도 때로는 틀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가 보았으니 틀림없다고 우겨대거나 내가 들었으니 틀림없다고 우겨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의 깊이는 ‘본다’는 것과 ‘듣는다’는 것에 집착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종종 엉뚱한 환상을 보거나 듣고 나서 그것이 유일무이한 진리인 것처럼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보았으니 틀림없다고 우겨대는 것입니다. 보았어도 잘못 보는 수가 있고, 들었어도 잘못 들은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알았어도 잘못 알 수가 있고, 또 제대로 알았던 것도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 바뀔 수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니 자기가 보았고, 들었고, 알았다고 해서 확실하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잘못입니다.
서로를 존중해야 건강한 공동체를 세울 수 있습니다. 교회공동체도 그렇고 가정 공동체도 그렇습니다. 내가 본 것이니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고 고집하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이니 그게 절대 진리라고 주장해서는 건강한 세상을 만들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는 보고 듣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생각하고 판단한 것이 유일무이한 진리인 것처럼 주장하면 교회는 늘 분란을 만나게 됩니다. 내가 보는 것이 부정확한 것일 수도 있는 것처럼 내가 생각해 낸 것도 완전한 진리는 아닙니다. 아무리 옳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양보하는 덕스러움도 있어야 합니다.
끝까지 주장하는 사람은 교회 지도자로서는 부적합합니다. 몇 번 주장하다가도 철회할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특히 교회는 더 그렇습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는 사람”보다 때로는 할 말을 참는 사람이 더 큰 일을 하는 곳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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