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05-12-2024
- 작성자 : 웹섬김…
- 조회 : 386
- 24-05-12 10:54
우리 모두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기독교 복음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는 ‘은혜’입니다.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 은혜이고, 자격이 없는 이들에게 조건 없이 주어지는 것이 은혜입니다. 받는 쪽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주는 쪽의 호의와 넉넉함 때문에 가능한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는 아무 공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죄와 사망의 노예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로 말미암아 구원이라는 놀라운 선물을 받았습니다. 이게 은혜이고, 이게 복음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솔직히 ‘은혜’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매정한 무한 경쟁 사회에 은혜가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은혜를 받고 싶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는다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고, 그럴 처지가 됐다는 건 어쨌든 ‘실패자, 낙오자’가 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심 은혜가 필요한 처지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소개한 나디아 볼즈웨버 목사의 <어쩌다 거룩하게>라는 책에 소개된 한 교인이 볼즈웨버 목사에게 했다는 말이 눈에 띄었습니다. “시종일관 은혜를 설교했으면서 정작 자신에게 은혜가 필요할까 봐 몹시 두려웠던 게로군요.” 마치 제게 하는 얘기 같아 뜨끔했습니다. 저는 교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죄의 용서와 회복의 길을 이야기하면서도 내게도 그것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내게 그런 걸 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런 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애써 감추며 살아갑니다.
블즈웨버 목사는 바쁜 일정 속에 정신없이 살아가는 자신을 ‘높이 쌓은 접시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웨이터’에 비유했습니다. 훌륭한 자기 관리처럼 보였지만, 실은 “그 빌어먹을 접시들일랑 그냥 떨어뜨려”라고 말해줄 사람이 필요했다고 고백합니다. 저도 역시 그런 심정으로 하루하루 삽니다.
한 주일에 새벽예배 설교 두 번, 수요예배와 주일예배 설교, 그리고 목요일과 토요일 두 번의 성경공부를 인도한다는 건 사실상 무리입니다. 매주 쓰는 이 칼럼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늘 제 설교와 칼럼에 가장 불만이 큰 사람은 바로 접니다. 그 밖에도 교회 안팎에서 제가 맡은 일을 허투루 한다는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아 노심초사하는 제 모습은 마치 세우면 넘어질까 두려워 자전거 페달을 계속 밟고 달려가는 형국입니다. 매일 3시 30분이면 잠에서 깨고, 그런 저를 걱정하는 아내가 몇 시에 일어났냐고 물으면 “어, 조금 전에 일어났어”라고 둘러대는 제 모습이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런 제게 여러분의 배려(은혜)로 두 달의 안식월이 주어졌습니다. 그냥 두 달 쉬는 게 아니라, 나도 은혜가 필요한 사람임을 깨닫고, 은혜 아래 자신을 맡기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안식월조차도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 만나고, 가보지 못한 곳을 다니느라 바쁘게 지내지 않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