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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김밥 전쟁] 03-16-2025


김밥 전쟁

재미있는 글을 읽었습니다. 어느 회사에서 아침을 먹지 못하고 오는 직원을 위해서 김밥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고, 담당 부서는 출근 시간에 맞춰 김밥을 준비했습니다. 서둘러 출근하느라 아침밥을 먹지 못한 직원들에게 김밥은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김밥이 너무 맛있어서 금새 동났다는 겁니다. 김밥이 부족해지자 일찍 온 사람은 같은 사무실 동료를 위해 여분의 김밥을 챙겼고, 그러자 김밥이 없어지는 시간이 점점 빨라졌습니다. 심지어 한 명이 부서 전체의 김밥을 챙기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눈앞에서 한 명이 열 개의 김밥을 가져가는 바람에 자기 먹을 것이 없어진 직원이 게시판에 ‘그러지 좀 맙시다’라는 원색적인 비난 글을 올렸습니다. 이제 본인 먹을 김밥만 가져가자는 사람과 옆자리 동료 김밥을 챙기는 게 뭐 어떠냐는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습니다. 결국 ‘한 개씩만 가져가자’는 쪽으로 정리가 됐지만, 자기가 두 개 먹고 싶어서 가져가는 건 허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이에 대해 그것을 허용하면 옆자리 동료를 위해 가져가는 사람을 구별할 수 없다는 주장이 또 갈렸습니다. 논란이 격해지자 누군가 2개까지만 허용하자 중재안을 내놨습니다. 실제 결론은 어떻게 났을까요? 결국 김밥을 없애는 것으로 결론나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후 누군가 새로운 제안을 할 때마다 김밥과 같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지를 먼저 검토하게 되었고, 논란이 생길 만한 일을 시행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일이 반복되자 직원들은 아예 제안 자체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실제 상황인지, 누군가 지어낸 글인지 모르겠지만, 얼마든지 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과연 김밥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했던 직원들이 회의 시간에 회사의 운명을 가를 수도 있는 이슈에 대해서 그렇게 진지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냈을지는 의문입니다.

이 사건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가능합니다. ‘취지는 좋았지만 공정한 분배 기준이 없었다’거나 ‘수요 분석과 그에 따른 대책 마련 없이 졸속으로 추진되었다’거나 ‘소통의 부재 또는 문제 해결을 위한 주체가 분명치 않았다’는 분석도 가능합니다. ‘직원들의 이기심과 타인에 대한 배려 부족’을 지적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조직 내에 갈등과 불신이 깊어지고, 심리적 안전성(어떤 아이디어든 자유롭게 제안할 수 있는 환경)이 훼손됐다는 점이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이런 일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좋은 취지의 일을 제안하고 시행하는 건 쉽습니다. 그러나 책임 주체가 분명치 않고, 의사 결정과 문제 해결의 주체가 명확하지 않으면 역효과가 나타나기 쉽습니다. 소통한다고 자기 주장을 마구 제기하면 소통이 아니라 소란해질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서로에 대한 신뢰와 배려, 책임감이 따르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기보다는 관계의 훼손으로 결론 날 가능성이 큽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하면서 이 김밥 사건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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