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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성경적’이라는 말의 뜻] 09-24-2023


‘성경적’이라는 말의 뜻

혹시 누가복음 12:47절에 어떤 말씀이 있는지 아세요?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저도 아주 낯설게 느껴지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노예 12년 Twelve Years of Slave>라는 영화에 보면 주일마다 노예들에게 성경을 읽어주는 백인 주인이 어느 날 노예들을 불러놓고 이 구절을 읽어주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하지 않는 깜둥이들, 자기 주인 나리에게 순종하지 않는 깜둥이들, 그런 깜둥이들은 매를 아주 많이 맞을 거야…채찍 40대 100대 150대란 말이야. 성경에 그렇게 나와 있어.” 성경을 인용하며 노예들을 채찍질하고 성경을 근거로 노예제를 정당화했던 때가 불과 160년 전입니다.

과연 ‘성경적’이라는 말은 어떤 뜻일까요? 제게 설교 시간에는 ‘성경적’인 것만 다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레이첼 에반스는 <성경적 여성으로 살아본 1년>이라는 책에서 ‘성경적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질문하면서 성경 몇 구절을 예로 듭니다. 그중 하나가 신명기 22:28-29절입니다. “만일 남자가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만나 그를 붙들고 동침하는 중에 그 두 사람이 발견되면 그 동침한 남자는 그 처녀의 아버지에게 은 오십 세겔을 주고 그 처녀를 아내로 삼을 것이라. 그가 그 처녀를 욕보였은즉 평생에 그를 버리지 못하리라.” 레이첼 에반스는 여성이 자신을 강간한 사람과 억지로 결혼해야 하는 게 성경적인가 묻습니다. 딸을 강간한 놈이 합의금을 들고 찾아와 자신이 딸과 결혼하는 것이 성경적인 해결 방법이라고 말하는 상황을 용납할 수 있을까요? 신명기 22장의 율법은 여성에게 성폭력을 가하고도 아무 책임을 지지 않던 시대에 여성 보호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경에 있다고 해서 오늘날에도 그 말씀대로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때로 저는 목사면서도 ‘성경적’이란 말이 두렵습니다. 자신의 결론과 태도를 정당화하는 데 성경을 인용하고, 자기 집단의 권위를 관철하고데 ‘성경적’이란 말을 사용하는 장면을 자주 봤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이렇게 입장과 이익에 따라 해석과 강조점이 다르니 사회 이슈나 윤리 문제를 성경적으로 토론해서 합의점을 찾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저마다 자기주장을 뒷받침하는 성경 구절만 내세우다가 마치 다른 성경을 읽은 사람들처럼 헤어집니다.

성경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거룩하게 받드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늘 고민과 해석이 따라야 합니다. 말씀 앞에 설 때마다 겸손해져야 하고, 오늘 내게 말씀하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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