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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세계 성만찬 주일] 10-01-2023


세계 성만찬 주일

교단 컨퍼런스에 참석 중인데, 호스트 교회에서 식사때마다 푸짐한 음식과 다양한 디저트 그리고 뿌리치기 어려운 맛있는 간식을 제공합니다. 먹고 강의 듣고, 먹고 또 강의 듣고, 이게 양육(養育)인지 사육(飼育)인지 분간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참석자들은 연신 맛있게 먹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먹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한국 사람에게는 특히 ‘먹는 일’이 중요합니다. 우리 말에는 ‘먹는다’는 말이 많습니다. 밥도 먹고, 술도 먹고, 마음도 먹고, 귀도 먹고, 나이도 먹고, 욕도 먹고, 담배도 먹고, (축구에서) 골도 먹고, 챔피언도 먹고, 눈칫밥도 먹고, 감동도 먹고. 그런데 절대 먹고 싶지 않은 게 있으니 ‘나이’입니다.

한국 사람만 먹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성경도 온통 먹는 이야기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이야기부터 최후의 만찬 이야기까지, 그리고 마지막 새 하늘 새 땅의 잔치까지 먹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예수님은 먹는 걸 좋아하셔서, ‘먹보(glutton)와 술고래(drunkard)’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도 주로 먹는 문제로 부딪혔습니다. 부활하신 이후에도 엠마오 가는 제자들은 먹다가 예수님 알아보고, 갈릴리 호수로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은 떡과 생선을 굽고 ‘밥은 먹었니’라고 물으셨습니다. 주님이 가르쳐준 기도에서도 ‘일용할 양식’을 구합니다.

이렇게 먹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던 주님은 배고픈 이들을 먹이기 위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지만, 그러나 당신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빵 한 조각 만들지 않고 사탄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그렇게 먹는 일이 중요했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건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만일 그게 중요했다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지 말고 계속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셨어야 했습니다.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이라는 유명한 그림이 있습니다. 밀레는 가난한 농촌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목가적이지만 가난과 고통과 슬픔이 짙게 밴 그림이 많습니다. 이 그림에는 세 여인이 이삭을 줍고 있습니다. 이삭을 주워 삶을 영위해야 하는 여인들의 고뇌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 여인 뒤로 어마어마한 곡식이 쌓여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실 때문에 분개했습니다. 지주들이 수확을 모두 가져가고, 농민들은 수탈만 당한 채 이삭이나 줍는 신세라는 겁니다. 물론 이 세상은 부조리합니다. 높이 쌓인 곡식단과 이삭을 줍는 여인의 모습은 현실을 통렬하게 고발합니다.

그러나 밀레가 이 그림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세 여인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부자만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이삭을 남겨주시는 분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고, 바람이 불지 않고, 햇볕이 비치지 않아도 농사가 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 힘으로는 곡식 한 움큼 얻기 어렵고, 인간의 힘으로는 달걀 하나 만들지 못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오늘 세계성만찬 주일을 지킵니다. 우리를 위해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신 영원한 생명의 빵이요 생수이신 주님을 기억하고, 그분이 베푸신 천국의 식탁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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