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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너희’가 없는 ‘우리’] 03-09-2025


‘너희’가 없는 ‘우리’

한국인은 ‘우리’라는 말을 참 좋아하고 많이 사용합니다. 흔히 서양과 동양의 차이 가운데 하나로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말합니다. 서양은 개인을 중시하고(그래서 ‘나’를 대문자 ‘I’로 쓴다고 하죠), 동양은 개인보다는 집단을 중시한다고 합니다. 동양에서도 한국인들은 ‘우리’ 의식이 매우 강합니다. 그런 의식이 언어생활에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우리 학교, 우리 교회, 우리 나라, 우리 동네’ 등 ‘나의(my)’보다는 ‘우리(our)’라는 단어를 즐겨 씁니다. 그런 의식이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도 나타납니다. 서양 사람들은 식당에서 주문할 때 “너 뭐 먹을래?”라는 질문을 잘 하지 않습니다. 각자 자기가 먹고 싶은 걸 주문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꼭 “너 뭐 먹을래?”를 묻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뭘 먹느냐에 따라 나의 메뉴가 달라집니다. 그건 그 식탁이 ‘내’ 식탁이 아니라 ‘우리’의 식탁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식탁이기에 다른 사람일 뭘 먹느냐가 관심이고, 그 메뉴에 따라 내 메뉴가 달라집니다. 기왕이면 다양한 메뉴가 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최근에 <착한 대화 콤플렉스>라는 책을 읽다가 ‘우리’라는 말에 의문을 제기한 대목에서 공감이 됐습니다. 저자는 ‘우리’라는 단어가 “상대방을 나와 같은 선상에 놓겠다는 동질감을 표현한 친목의 언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책을 읽다가 “우리는 외국인, 이주민, 장애인, 소수자의 고통에 내 일처럼 공감하는가?”라는 문장에서 더할 나위 없이 친근했던 그 말에 위화감이 들었다고 고백합니다. 이 문장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라는 단어와 그 뒤에 나오는 집단들을 구분짓고 있는 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우리라는 단어는 끌어당김과 동시에 언제든 밀어낼 수 있는 힘을 지녔다”고 지적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라는 말은 참 좋은 말이지만, 자칫하면 ‘우리’라는 말에는 ‘너희’를 전제할 때가 많습니다. 패거리 의식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끌어당기는 힘이 아니라 밀어내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초기 인류는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식량 부족이나 자연재해와 같은 위험을 피하기 위해 주변 환경의 변화에 민감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위험 감지 능력은 단순히 개인의 생존뿐만 아니라 집단 전체의 생존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생존을 위해 신뢰할 수 있는 소규모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인간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속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을 구별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도 인류는 환대라는 전통을 만들어 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요즘 세상은 점점 경계를 확대하고, 패거리 의식을 강화하면서 환대의 문화 대신 대립과 갈등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주님은 그런 담을 허시고,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자유인과 종을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그게 십자가입니다.

우리에게 ‘우리’는 밀어냄의 힘인지 끌어당기는 힘인지를 깊이 돌아보고, 참 좋은 ‘우리 의식’을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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