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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04-13-2025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인상 깊은 장면은 포레스트가 미국 전역을 몇 년간 달린 끝에 사막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멈춰서서 그를 따라 달리던 수많은 사람에게 “I'm pretty tired… I think I'll go home now. 나 너무 피곤해요. 이제 집에 가야겠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제가 16년의 중앙교회 목회를 마치고 연말에 은퇴하기로 했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92년 1월에 첫 풀타임 목회를 시작했으니 33년이 됐고, 신학교 시절 파트타임 전도사 기간까지 합하면 36년입니다.

당회의 배려와 노회의 협조로 저는 4월 27일 주일까지 시무하고, 연말까지 안식년을 갖게 되며, 교회는 담임목사 청빙위원회를 구성하여 중앙교회 4대 목사를 청빙하게 됩니다.

교우들께서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당혹스럽겠지만, 저는 오래전부터 고민하며 기도해 온 일입니다. 제 나이가 은퇴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제가 올 연말이면 62세니까 흔히 말하는 ‘은퇴’를 시작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물론 은퇴를 위한 준비가 충분히 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단 현재의 자리에서 물러나 퇴수(退修/retreat)의 시간을 갖다 보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길로 이끄시리라 믿습니다.

담임목사로 목회하려면 능력과 열정과 자격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저는 얼마 전부터 제 능력과 열정과 자격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걸 느꼈고, 이런 상태에서 현상 유지를 하면서 목회를 계속하는 것은 교회에도 제게도 유익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작년부터 저는 우리 교회가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변화를 추진하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야 할 때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그런 변화는 제 몫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조직이 변화를 추구할 때 여러 방식이 있겠지만, 저는 리더십의 변화가 가장 효과적이고 실제적이라고 믿습니다.

한국 교회는 아무래도 담임목사의 비중이 큽니다. 저는 담임목사의 권위가 지배하는 교회를 비판하고, 민주적이고 시스템이 작동하는 교회를 만들어 보겠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 역시 담임목사의 역할과 영향력이 절대적인 교회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변화는 담임목사의 변화와 함께 시작될 것입니다.

저는 지난 16년간 참 행복한 목회자였습니다. 제가 부임할 당시 우리 교회는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었지만 소박하고 진실한 교인들 덕분에 많은 변화를 이루었고, 열매도 많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교우 여러분이 제게 보내준 성원과 헌신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저는 그저 감사하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이민 목회는 살얼음판을 걷는 일이라고 합니다. 목회뿐 아니라 우리 인생은 늘 아슬아슬한 모험의 연속입니다. 제가 그 살얼음판을 아슬아슬하게 걸어 여기까지 온 건 여러분의 인내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저를 참아주고 감싸주며, 믿고 따라와 주셨기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는 이제 교회가 새로운 담임목사를 청빙하여 새롭게 변화, 발전하는 모습을 기대하며 기도하겠습니다. 그동안 참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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